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말 3대 의안 (문단 편집) == 공통 원인 == 이들 사건이 나타난 직접적인 배경은 모두 만력제 때 벌어진 제위 계승 분쟁 때문이다. 황후 왕씨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던 만력제는 정귀비를 총애하여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 복왕 [[주상순]]을 황태자로 삼으려 하였다. 하지만 조정 관료들은 정실 소생 아들이 있으면 적장자를 세우고, 없으면 장자를 세워야 하는 종법 원칙에 따라 장자 [[주상락]]을 황태자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. 이를 '''국본의 쟁(國本之爭)''' 또는 '''쟁국본(爭國本)'''이라고 하는데, 황태자 책봉을 둘러싼 정쟁은 1586년부터 16년 동안 지속되었다. 결국 1601년 만력제는 20세가 된 주상락의 황태자 책봉을 더 미루지 못하고 받아들였지만, 주상락을 냉대하여 황태자 지위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하였고 이후 모든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